못
못이란 글자는 아무데도 못 가요
못은 한 번 박으면 움직이지 못 하지요
움직이면 굽어서 못 쓰잖아요
못이란 연못이지요.
흐르지 못 하는 물이잖아요
또 못 字가 들어갔네요.
연못 속엔 연꽃이 탁한 물을 정화시켜주지요
못이란 못 할 일이 없다니까요
못 할 일이 있다는 말도 되지요
못비가 오면 못밥을 먹을 수 있거든요
못이란 다 못하는 게 아니에요
아무데나 못 박으면 안 되지요
편자에나 못을 박지 식도에까지 못을 박다니
참치횟집에서 참치눈물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아요.
딱 한 모금이 목에 걸려 못 넘어가거든요
못이란 뭐든지 자유자재하는 힘을 갖고 있다니까요
「못」《열린시학》2014년 봄호
심사평
이아영 시인의 못은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언어에 대한 감각과 만나 형상화된 작품이다.‘못’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글자다. 벽에 막는 못. 연못을 뜻하는 못. ‘못한다’의 ‘못’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의미와 속성을 시인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못철학’을 펼친다. 위의 세 가지 중 첫째와 셋째 의미로 ‘못’을 읽으면 못은 정지와 금지를 가지지만 연못으로 읽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러나 “못이란 연못”이기에 가능성을 품고 생명을 길러내는 힘을 갖는다. 못은 “탁한 물을 정화시켜”“못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재생과 상생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함부로 “아무데나 못 박으면 안”된다. 특히 자유로운 생명활동을 상징하는 “식도에까지 못을 박”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시인에게 이제 모든 못은 “못 할 일이 없”는 자유자재하는 힘을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낱말이다. 부정의 이미지를 긍정의 이미지로 전환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작품이다.
절제와 사유가 어우러진 가운데 행간마다 삶의 미학을 진솔하게 담아낸 윤향기 시인과 이아영 시인의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두 시인이 모두 열린시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올곧은 시인의 길은 더욱더 거침없이 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 이지엽.하린(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