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月谷)의 가을 / 만은 김종원
가을비가 춥다고
찌익 찌익 찌익 찌익
고추밭 언덕에 숨어 드는
풀벌레 소리
깍깍깍깍
까치가 은행나무 꼭대기에서
하루를 재촉하면
들판 가득 노랗게 고개 숙이는 월곡(月谷)
고추밭엔 벌써 빨간 사랑을 장전한 고추들
놀란 밤송이들은 벌겋게 입을 쩍 벌리고
감나무 가지마다 나앉은 감들은
수줍어 얼굴 붉힌다.
대추알이 무거운 대추나무는
어깨를 자꾸 늘어뜨리고
콩밭 콩잎들 누렇게 빛 바랜 손 흔들며 떠나갈 때
어깨동무하며 새롭게 우애를 다짐하는 콩꼬투리들
콩깍지 태워 콩 볶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늘 다정한 이웃이야
세상을 다 알아버린 양
호박꽃 한 쌍
큰 입 벌려
더욱 노랗게 채색되는 세상
오늘도 뉘 집 상여가 나가는지
까마귀 울고 간 하늘 아래
저 홀로 키우는 순정이 산골 마을
마당 끝 화단 국화 봉오리마다
노오랗게 익어간다.
(2004.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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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月谷)의 가을 / 만은 김종원
오랜만에 둘러본 전북 장수의 월곡(月谷).
세상은 온통 노랗게 익어 한가위를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가을비가 질금거리는 마을 고추밭 언덕엔 풀벌레가 끊임없이 울고, 은행나무 꼭대기엔 까치가 날아올라 깍깍깍깍 하루를 챙기고 있었습니다.
고추밭엔 고추의 빨간 순정이 서둘러 익어 가고, 고추밭 가장자리 밤나무 밤송이엔 알밤이 입을 쩍 벌리고, 감나무엔 수줍은 감들이 붉게 익어 가고, 대추알이 무거운 대추나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동족 상잔의 짓거리만 않는다면 우리는 늘 형제라며 호박꽃이 큰 입을 벌려 노랗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는데 우리 인간이 자연에게서 배우지 않고 동족 사랑을 누구에게서 배우겠습니까?
뉘집 상여가 나가는지 까마귀가 울고 간 하늘 아래 새로운 순정은 또 아름답게 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곧 한가위도 돌아오는데 고향에 들러 성묘도 하고, 막걸리 한 잔에 고향의 정취도 느끼는 등 자연에 푹 안겨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저기 고향 산천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네요.
.......<2004. 09. 20(월) 오후 만은 드림>............
* 만은 김종원 문학서재: http://kjw.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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