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소개

이름 전주정성수 이메일 jung4710@hanmail.net
작성일 2021-01-18 조회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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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辛丑年 소띠해 祝詩



소와 아버지와 코뚜레


소는 아버지에게 코뚜레를 잡힌 채 논밭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네 발목이 수렁논에 푹푹 빠졌다. 이밥 한 그릇을 위하여 아버지는 소의 코뚜레를 힘껏 움켜잡았다. 소는 황토밭에서 콧김을 푹푹 뿜어댔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가난을 벗어야 한다는 아버지는 소의 코를 수시로 뚫었다.


소와 아버지를 보면 소가 아버지인가 아버지가 소인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가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것이나
아버지가 소를 몰고 가는 것이나
순전히 코뚜레의 힘에 달렸다


소는 아버지에게 코를 뚫렸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코를 뚫렸다. 소는 아버지처럼 일하고 아버지는 소처럼 일했다. 어느 날 코뚜레가 풀려 소는 푸줏간으로 가고 아버지는 산으로 갔다. 코뚜레는 소의 일생이자 아버지의 일생이었다.



봄이 온다


소가 앞서면 아버지는 쟁기를 지고 소를 따라 나섰다
소와 아버지는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봄맞이를 하러 가는 것이다


소는 봄이 어디쯤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아버지에게 쟁기를 세우고 보습을 땅에 박으라 한다
온몸이 근질거린다는 대지가 가쁜 숨을 뿜어대면
아버지는 과감하게 소를 몬다


소와 쟁기와 아버지가 일렬종대로 보폭도 당당하게 전진하면
봄은 좌우로 도열한다
땅을 간다는 것 흙을 뒤집는다는 것은
씨앗의 집을 짓는 일이다


싹이 돋고 잎이 자라고 열매가 맺으면
밥과 입 사이 간극은 좁아져
만복의 기쁨이다


채반처럼 큰 쇠똥에서는 봄냄새가 나고
걷어붙인 아버지의 장단지에서는 푸른 핏줄이 섰다


논밭에 심어 놓은 곡식들은 살붙이고 한 식구다
소는 들녘이 좋아 풀을 뜯고
아버지는 흙이 좋아 땅에 눕는다
저기 봄이 온다




저녁이 오기 전에 제 가죽을 깔고 하늘을 보는 소들은 많다
트럭에 싣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울음소리가 대로에 질펀하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마저 감추고
방향도 모른 체 소들은 간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소는 되새김질에 여념이 없고 어떤 소는 큰 눈망울을 굴리며 먼 산을 본다. 저것들은 순종인지 굴종인지,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은 캄캄한 어둠 뿐. 잡혀가는 소들은 살과 뼈와 피를 바치러 가지만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 안 한다.


한번도 자유를 누린 적이 없는 소들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그것도 모자라
우족탕이 되고 설렁탕이 되고 갈비탕이 된다


길 위에서 길 밖에서 길 안에서 인간들이 길을 잃을 때,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들은 쟁기를 차고 논밭을 갈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코뚜레가 풀리고 멍에를 벗는 순간 소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배를 깔고 워낭을 흔들어도 하늘과 땅 사이에는
알아듣는 짐승들이 없다
소의 생애는 어쭙잖은 인간 보다 백배나 났다




소가 여물을 먹고 있다 외양간에서
두 무릎을 꿇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물을 부처님께 공양하듯이
여물을 씹을 때마다
턱밑에 매달린 워낭이 풍경소리를 낸다


마당에는 싸륵싸륵 눈이 쌓이고 잠이 든 세상은 끝없는 설원이다
쓴 내 나는 논 ․ 밭갈이도
등짐을 지고 산을 넘어오던 고통도
조용조용 내리는 눈발의 화음에 귀를 맡긴다


사람들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

귕~


나도 한번은 아버지의 밥그릇이 되고 싶다
퍼먹어도 퍼먹어도 굻지 않을
햅쌀밥 고봉으로 담고서
아버지의 턱밑에 다소곳이 엎드린 


눈 내리는 겨울 저녁 가슴속을 다 파낸 소여물통을 같은 그런

․               

                              귕 : 아름드리나무의 가운데 속을 파 낸 통나무로 된 소여물통.



소에 대한 보고서


머리에 꼬리까지 몽땅 내주고 가는 소들이
길을 잃었다
말 못하는 것들이 사성암°을 찾아간 것은
홍수를 피해 도망 간 것이 아니라 절망의 세상을 부처께 빌러간 것이다
바리때 하나 들고서

 

구레 소 농장에서 실종된 소떼들이 55km나 헤엄쳐 무인도에 상륙한 것은
자기들만의 세상을 찾아간 것이다
소처럼 일하다가 소처럼 죽는다 할지라도
저희들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다며
길을 따라 갔다


하늘을 닮은 커다란 눈망울에서 종소리가 난다


너희도 소처럼 살아라 소처럼 일해야 한다고 워낭을 흔든다
귀 없는 인간들은 듣지 못한다
마음이 열리지 않은 인간들은 들리지 않는다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는 우직한 저
소들
하늘을 향한 두 뿔에는 아무데나 들이받지 않는 유순한 마음이 있다


                   ‧ 사성암°四聖庵 :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창건했으며 신라 원효元曉, 연기도선烟起道詵, 고려 진각眞覺 국사혜심慧                  諶 이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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