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협 사화집 원고
젖은 몸을 말릴 수 있을까
김용언
나뭇잎과 풀잎들이 술렁거리더니
용접하듯 붙여 놓았던 추억들이 분해되어
소리에 젖기 시작한다
추억은 여울물에 떠내려가는 단풍잎
출렁거리는 얼굴들
사랑도 시들해지는 가을산에
가을비가 소리로 다가오는데
비보다 소리에 흥건히 젖는 나
얼마나 더 살아야
젖은 몸을 말릴까
허공에 매달렸던 꽃잎
그리고 산새들 울음 소리
빗물에 떠내려 간다
구속에서 해방된 생명들의
새로운 여행길이다
청춘
청춘이라는 말이 새롭다
늑대의 눈빛 같은 그말
슬금슬금 가슴이 뜨겁다
긴 세월을
혹은 짧은 세월을 살다 떠나도
사랑이라는 말에 취해 비틀거린 경험이 있다면
물처럼 삼켜 버린
청춘이라는 낱말이 목에 걸릴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이란 뜨거운 감자 같은 것
내가 없는 집은 빈 집이고
아내가 없는 집도 빈 집이고
사랑이 없는 집도 빈 집이고
죽음처럼 고요한 바다
청춘이라는 말을 가슴에 떠올리면
벌에 쏘이는 순간처럼
화끈
화끈
진땀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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